대한불교조계종 상왕산 보원사
조선시대
- 조선 중기 1530 『신동국여지승람』 권19에
'선상' 불우(佛宇)조에 "보원사는 상왕산에 있고 운암사(雲巖寺)는 팔봉산에 있다'고 명기되었다.
서산 개심사에 보존된 경판(經板) 중에 조선 명종20년(1565년), 명종21년(1566년), 선조24년(1591년)에 제작된 보원사(普願寺) 판본이 발견되었다.
- 선조10년(1577년) 『예수십왕생칠제의찬요』가 보원사(普願寺)에서 간행되었다.
광해군 11년(1619년)에 편찬된 호산록53쪽 불우에 의하면
"강당사(講堂寺)가 두가지 이름이 있으니 한 가지는 보원사인데 그것인 즉 옛 이름이다. 한 가지는 강당사이니 그것인즉 새로 지은 이름이다. 절 문 앞에는 맑은 내와 흰 돌이 있는데 눈같이 흰 고기떼가 놀고 있다. 법당 앞에는 2층의 높은 집이 구름 속으로 우뚝하게 높이 솟아있고 그 위에는 희고 검은 색의 비둘기 백여마리가 아침 저녁으로 날아서 오가고 있다."
- 부도(부처)의 정전 뜰에는
- 옛 비석이 있는데 송태조(961 ~ 975) 때에 건립한 것으로 그 높이가 세길이나 되며 글자는 이끼가 덮여서 읽을 수가 없다. 나한전은 산협 가운데 있고, 푸른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심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늙은 가지가 무성하고 푸른 그늘이 아름다우며 이따금씩 구름과 우뢰소리가 그 위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절은 오래되고 중들은 쇠진해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숙종 8년(1682)에 제작된 『동여고비(東輿備考)』에 보원사(普願寺)가 표시된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까지 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