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법보에 올려진 보원사 방문 기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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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1 작성일06-12-15 13:45 조회5,611회 댓글0건본문
2006년 12월 10일 화계사 주지 수경스님과 화계사 국제선원, 화계사 신도님들은 만공스님 열반 다례제에 참석 후, 서산에 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과 보원사지를 다녀왔습니다.
만공 스님의 속명은 도암 道巖, 법호는 만공, 법명은 월면 이다. 전라북도 태인에서 부친 송신통 宋神通과 모친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3년 13세 되던 해 김제 금산사에서 불상을 처음보고 크게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공주 동학사로 출가하여 진암(眞巖) 문하에서 행자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경허 스님을 따라 서산 천장사로 와서 태허(泰虛)스님을 은사로 경허를 계사로 사미십계를 받고 법명을 월면(月面)이라 하였다.
경허 스님의 법을 이은 스님은 덕숭산에 와서 금선대를 짓고 수 년 동안 정진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납자들을 제접하며, 수덕사, 정혜사, 견성암을 중창하고 많은 사부대중을 거느리며 선풍을 드날렸다
덕숭문중의 법맥을 형성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한 그의 문하에는 비구 보월(寶月), 용음(龍吟), 고봉(高峰), 금봉(錦峰),서경(西耕), 혜암(惠庵), 전강(田岡), 금오(金烏), 춘성(春城), 벽초(碧超), 원담(圓潭) 등과 비구니 법희(法喜), 만성(萬性), 일엽(一葉)등 당대에 뛰어난 제자들이 있다.
이는 일제 치하의 치욕스런 불교정책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만공의 사상은 생사를 초탈한 선사의 가풍이라 할 것이다. 말년에는 덕숭산 정상 가까이 전월사 轉月舍라는 초가집을 짓고 지내다가 입적하니, 1946년 10월 20일 그의 나이 75세, 법랍 62세였다.
그 뒤 제자들이 정혜사 아래에 만공탑 滿空塔을 세우고 진영 眞影을 경허. 혜월 스님과 함께 금선대에 봉안 하였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서산마애불( 瑞山磨崖佛 )은 태안마애삼존불( 泰安磨崖三尊佛 )(보물 제432호)과 함께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낸 마애석굴(磨崖石窟)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삼존불은 가운데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이 배치된 특이한 삼존형식으로서, 이는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의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달라지며 빛과 조화에 의하여 진가를 보이도록 한 백제인의 슬기가 놀랍습니다. 특히 이곳은 백제시대 중국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걸작이라 하겠습니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한 보물 제104호인 보원사지5층석탑(고려시대)을 돌아보았습니다.
보원사지 5층석탑은 보원사(普願寺)터 서쪽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입니다. 보원사는 백제 때의 절로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절터에는 이 탑 외에도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과 탑비, 당간지주, 석조 등이 남아있어 당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탑은 세부조각이 형식적으로 흐른감이 있으나 장중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고려 전기의 우수한 석탑입니다.
보물102호인 보원사지석조는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으로, 원형·팔각형·장방형 등이 있습니다. 이 석조는 화강석의 통돌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형식을 보입니다. 규모가 거대하며 표면에 아무 장식이 없어 장중해 보이기도 합니다. 내부 각 면에도 조각한 흔적이 없으며, 밑바닥면은 평평하고 한쪽에 약 8㎝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을 뿐입니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에는 거친 다듬자국이 그냥 남아 있어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서산시가 화엄 10찰 중 하나인 보원사지의 종합정비계획을 명분으로 보원사지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보원사의 토지를 강제 수용한 뒤 사찰은 강제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화재를 바라보는 서산시의 수준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일이기에, 심각한 우려의 뜻을 표명합니다. 2004년 서산시를 복음화하겠다고 기도했던 시장의 비뚤어진 종교 편향이 더해지면서 조계종 총무원이나 보원사지를 관장하고 있는 교구본사인 수덕사가 수차례에 걸쳐 보원사 토지의 강제 수용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협의를 요청했음에도 서산시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이를 묵살했습니다. 종교편향적인 시장의 전력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비뚤어진 시장의 종교관에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서산시가 보원사지를 제대로 정비해 불자들의 신행이 살아 숨 쉬는 대가람으로 가꾸겠다는 의지가 터럭만큼이라도 있다면 이제라도 강제 수용 의지를 철회하고 불교계와 협의해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화계법보 편집부 정리
사진제공 덕엄심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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