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보원사 서산마애삼존불길천년고찰 절터 바위에 벙글어진 ‘백제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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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7-24 15:22 조회8,586회 댓글0건본문
[여태동 기자 사찰숲길을 거닐다] ⑮ 보원사 서산마애삼존불길천년고찰 절터 바위에 벙글어진 ‘백제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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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봉 산허리로 밝은 빛이 내려온다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변한다 산꽃 색의 농도와 어울린 백제의 미소가 은은하게 벙글어진다 “아!” 감탄사가 저절로…
여명이 반기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산새들이었다. 해 뜨는 서산을 향해 새벽에 달려간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을 친견하러 가는 길. 밤새 모든 게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깨어 있는 것들이 많았다. 계곡물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뜨면 부처님의 미소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른 새벽 부지런히 자동차 가속기를 밟아 도착한 서산 보원사 마애삼존불길 용현계곡에는 뭇 생명들이 일찌감치 일어나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1959년에 발견돼,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은 그동안 단순히 문화재로만 보존되어 왔다. 수많은 민초들이 신앙했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지 못한 게 안타까워 현 주지 정경스님과 전 주지 정범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 나섰다. 세간에서도, 출세간에서도 형제인 두 스님은 2004년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갖 수난을 받았다.
“문화재 앞에서 무슨 짓이냐?”며 관할 공무원들이 스님을 끌어냈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용맹정진한 끝에 지금은 불자들이 마음 놓고 친견하며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2005년에는 마애삼존불 아래에 존치해 놓았던 석조비로자나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부처님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애삼존불 아래 관리실에서 머물면서 스님들이 기도를 할 수 있게 됐다. 6시50분에 도착한 스님이 마애삼존불로 안내했다. 삼불교를 건너 돌계단을 올랐다. 수정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을 지나 관리실에 이른다. 그 앞에 불이문(不二門)이 서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세계에 든다. 지극한 마음이 든다. 다시 돌계단을 오르니 마애삼존불이 우뚝 서 있다. 건너편 상왕산에 산벚이 하늘에 분홍구름을 수놓듯이 피어 있고 수정봉 산허리로 밝은 빛이 내려온다.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변한다. 산꽃 색의 농도와 어울린 백제의 미소가 은은하게 벙글어진다.
“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6세기말에서 7세기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삼존불은 발견된 후 국보로 지정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백제인들의 세련된 기술로 부드럽게 조각된 부처님의 미소는 그 어떤 미소보다 아름다웠다. 80도로 기울어진 채 조각되어 있어 비와 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게 한 점도 과학적으로 우수하게 평가받고 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동트기 전에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 수고로움을 한 순간에 보상받는 순간이다. 지금은 첩첩산중이지만 마애삼존불과 보원사가 있었던 이 지역은 과거에는 교통의 요지로 아주 번성한 곳이었다. 삼존불이 조성된 시기인 6세기말, 7세기 초는 백제시대였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과 신라의 강성으로 한강유역을 빼앗겼다. 그로 인해 중국과의 교역은 해로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지역은 태안반도에서 백제의 수도인 웅진(공주)과 사비(부여)로 가는 교역로 역할을 했다. 저 멀리 중국 실크로드를 거치고 산둥반도를 건너는 곳곳에 마애불이 조성돼 교역하는 상인들이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다.
마애삼존불을 친견 후 보원사지로 향한다. 용현계곡 초입인 마애삼존부처님에서부터 1.2km 거리다. 덩그러니 폐사지로 남아 있는 초입에 보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사찰은 보원사지를 보존하기 위해 수덕사 스님들이 부지를 매입해 세웠다. 사지를 가로 지르는 계곡이름이 용현계곡(龍賢溪谷)이다. 긴 용이 굽이굽이 몸을 움트리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주변에는 10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니 과거에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가늠이 된다. 고려시대 광종 임금 때는 나라의 왕사였던 법인국사가 주석한 곳이다. 당시에는 1000여 명의 스님들이 주석하며 화엄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 거대했던 화엄도량이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는데 이유는 전하지 않는다. 보원사지를 감싸고 있는 가야산 일대는 어떤 지역보다 계곡이 크고 깨끗하다. 그래서 여름에는 반딧불이를 흔히 볼 수 있다. 지난 17일 찾은 용현계곡에는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에는 산꽃이 만발했고, 들에는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봄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소리로 들렸다. 오랜 가뭄 끝에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원사지 위쪽 산인 상왕산에도 단비가 후두둑 떨여진다. 산 너머 개심사에도 봄비가 갈증에 허덕이는 산을 적시고 있을 듯하다. 한동안 조용하던 산에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보원사 추녀 끝으로 비를 피한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보원사지를 촉촉이 적신다. 법당에 모셔놓은 철부처님이 ‘어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불교신문3296호/2017년5월6일자] 서산=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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