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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거닐다보면 역사가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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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3-22 14:55 조회7,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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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거닐다보면 역사가 속삭인다
[서산 아라메길 트레킹 코스] 유기방가옥~해미읍성 1구간 개통,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유산 산재 문화재 둘러보며 ‘일석이조’ 체험 … 市, 2015년까지 17개 길 완성계획
newsdaybox_top.gif 2012년 03월 22일 (목) 박계교 기자 btn_sendmail.gifantisofa@cctoday.co.kr newsdaybox_dn.gif
서산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이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갖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대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아늑함과 포근함이 담긴 친환경 트레킹 코스다.

현재 아라메길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소재 유기방가옥을 시작으로 선정묘(0.3㎞)~유상묵가옥(0.8㎞)~미평교(4.7㎞)~고풍저수지(5.5㎞)~용현계곡입구(6.8㎞)~마애여래삼존상(7.4㎞)~보원사지(8.9㎞)~개심사(13.0㎞)~임도접경지(15.3㎞)~분기점(공터 16.3㎞)~정자(조망대 17.0㎞)~해미읍성앞(20.2㎞)으로 이어지는 1코스가 개통됐다.

▲ 아라메길 1코스는 유기방가옥부터 해미읍성 구간에 걸쳐있고 총 길이는 20.2㎞이다.
1코스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를 통과하는 게 특징으로, 곳곳에 산재된 문화유산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의 발자취를 알아갈 수 있다.

시작점은 유기방가옥(도지정 민속자료 제23호)부터다. 유기방가옥은 전통 양반가옥으로 야산을 뒤로하고 ‘U’자형으로 토담을 두른 후 동측에 사랑채공간과 서측에 안채공간을 토담으로 구분한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전통양반 가옥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해 조선후기 주택사의 학술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선정묘가 나온다.

선정묘는 조선조 제2대왕인 정종대왕의 제4왕자인 선성군의 후손인 이창주(1567~1648)가 이곳에 내려와 어러대 머물러 왔는데 이정방, 이진백, 이택 등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된 연고로 조선조 말경 당초 경기도 파주지역에 있었던 선성군사당을 이곳에 이건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에는 전국에 있는 후손들이 모여 제향하고 있다.
▲ 아라메길을 걷고 있는 도보 여행자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홀로 서 있는 미륵불을 만날 수 있다. 강댕이미륵불로 불리는 이 미륵불은 고풍리에서 용현2리 강당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고풍리에 있었는데 1973년 고풍저수지가 축조돼 수몰되자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서산마애여래삼존불(국보 제84호)이 반긴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작품이다.
서산마애여래삼존불은 백제 불교미술이 절정을 이루던 사비시대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충청인의 넉넉한 성품을 고스란히 간직한 백제미술의 정수로 손꼽힌다. 중앙에 석가여래입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미륵반가사유상, 왼쪽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선명하게 조각돼 있는데 이는 왼쪽부터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불로서 당대인들은 삼존불을 조각할 때 지난날의 보살핌과 오늘날 풍족한 삶에 대한 감사, 그리고 다가올 날에 대한 평안을 기원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서산마애여래삼존불의 배웅을 받아 보원사지(사적 제316호)로 자리를 옮기면 신라말기 절터의 고요함을 맛볼 수 있다. 건물이 존재하지도 않아 황량하기는 하지만 석조(보물 제102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법인국사보승탑(보물 제105호) 등의 유적을 통해 절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 발굴중인 보원사지 터
보원사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인 것으로 추정되며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돼 백제 절일 가능성도 있다. 법인국사보승탑비에 승려 1000여 명이 머물렀다는 기록으로 미뤄볼 때 당시엔 상당히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실제 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도 대형 사찰이었음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마음을 여는 절이라는 뜻의 ‘개심사’는 충남 4대 명찰로 꼽히는 백제시대의 사찰이다. 가야산의 중심사찰인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 혜감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 처능대사에 의해 중수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웅전(보물 제143호)은 기단만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성종 15년에 다시 중건했으며,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4호)과 금동여래좌상(보물 제1266호) 등의 문화유산도 만나볼 수 있다. 절 앞으로 길게 뻗은 연못 안의 나무다리를 건너 경내로 들어서면 개심사 특유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고,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전서체로 멋스러우면서도 장중하게 쓴 ‘상황산개심사’라는 현판글씨도 범상치 않다. 문화재청은 최근 개심사가 소유하고 있는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五方五帝位圖 및 四直使者圖)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 바 있다.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는 1676년에 화승 일호(一浩)가 단독으로 그린 것으로 사찰에서 의식을 행할 때 도량장엄용으로 조성했으며, 현존하는 도량장엄용 불화 가운데 조성 연대가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가치가 높다.

아라메길의 종착역은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이다. 해미읍성은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해 세종 3년(1421)에 완성됐으며, 태종 14년(1414)부터 효종 2년(1651)까지 군사의 중심지였으며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부임해 근무하기도 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고창의 모양성, 순천의 낙안읍성과 함께 원형이 잘 보존된 성으로 2㎞ 둘레의 성벽은 매우 훌륭한 산책코스다. 본래 해미읍성은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영, 즉 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천주교 역사에서는 피의 순교사를 써 내려간 슬픔을 간직한 장소로, 1866년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도 1000여 명이 처형된 형장으로 이용됐다. 정문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서면 60m 앞 정면에 커다란 고목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수령 300년이 넘은 이 나무가 바로 사형대로 사용됐다.

▲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유기방 가옥
이렇게 아라메길을 둘러보면 6시간정도 걸린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하면 첫 출발지점인 유기방가옥인 아닌 출발하고 싶은 지점에서 출발, 아라메길을 느끼면 된다.

즉 아라메길은 시작과 끝이 없는 길로, 발걸음이 처음 가는 곳이 시작점이고 멈추는 그 곳이 종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시는 지난해 ‘해미읍성~개심사~마애삼존불’에 이르는 13㎞의 지선코스를 추가로 개통하고, 이를 다시 ‘황락저수지~천장사~신송저수지~고북면 간척지’로 연결하는 등 모두 6개 구간 55.4㎞에 대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나아가 시는 2015년까지 총 사업비 43억여 원을 들여 17개 구간 239㎞의 보고 듣고 느끼며 사색하는 아라메길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서산 아라메길은 2년 연속 행정안전부 주관 '친환경생활공간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비 5억 원을 지원받게 됐다.

한기홍 서산아라메길추진협의회 이사장은 “아라메길 1코스가 개통을 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로 보면 된다”며 “언제든지 가족, 친구들과 정겹게 걸으며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아라메길 조성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산=박계교 기자 antisof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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