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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신음소리(세계일보 칼럼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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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7-04-28 17:15 조회5,2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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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가야산의 신음소리
 
 
 
 
 
도시 한가운데서 복작복작 살다 보면 성격도 거기에 적응한다. 모두 다 이기적이니 나도 이기적이 되고, 모두 다 긴장을 늦추지 않으니 나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도시인들은 대부분 예의바르지만 냉정하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일부터 전투지만 알고 보면 지독히도 소심하다. 세련되었으나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문득문득 자연과 만나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뭇 생명들이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봄이니까.
생명의 노래를 듣는 자는 기분 좋게 작아진다. 동해에 떠오른 태양을 마주하고 서 있으면 ‘나’는 사라지고 찬란한 광명만 희망으로 남고, 서해에 지는 일몰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아예 그리움이 된다. 존재 증명을 위해 악을 써야만 하는 곳이 도시라면 자연은 그 아집 덩어리 ‘나’를 내려놓게 한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빛 좋은 봄날 나는 서산 가야산에 들었다. 깊고 깊은 산 가야산은 할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온화한 산이다. 하산길에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만나니 가슴이 저린다. 왜 아름다운 것은 상실수업을 시키는지. 한숨을 몰아쉬다 보면 세상에 미운 이도, 원망할 일도 없다.

가야산에는 1000년의 세월을 버텨온 개심사가 있고 일락사도 있지만,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간 폐사지들도 많다. 그중에는 보원사지처럼 발굴되고 있는 절도 있지만 그저 바람이 전하는 말 속에서 문득 여기였겠구나, 느끼게 되는 그런 터도 있다. 백제시대에는 이 깊은 산에 108개의 절이 있었다 하니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또한 가야산은 박해받았던 천주교인들이 숨어들어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린 곳이고, 사람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 믿었던 동학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고 만물을 공경하는 힘으로 새로운 하늘을 열려 했던 동학군들이 그 꿈을 삼키며 영원한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간 곳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애상이 되고 자연이 되고, 역사가 신화가 된 이 땅이야말로 고단한 현대인의 삶을 정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모든 긴장을 이완하고 세상의 눈물을 생명수로 바꿔주는 이곳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내포문화권을 개발한다며 내포문화권의 중심인 이곳에 관통도로를 뚫고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거였다. 내포문화권 개발 예산으로 나온 혈세를 쓰겠다는 욕심으로 만들어지는 볼썽사나운 개발 계획이 오히려 내포문화권을 망치는 계획이니 이 황당함을 어이할지. 설상가상으로 한전은 다정한 연인의 품속 같은 이 산 곳곳에 송전철탑을 세운단다.

이 개발의 바람을 어이하나? 현대사회에서 개발을 반대할 수는 없다. 아니 개발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도 보물인 산 가야산을 망치는 걸 개발이라 할 수 있을까? 돈이 생겼다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내쫓고 안방을 바(bar)로 만들겠다는 천박한 발상이다. 현장을 보고 간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단호했다. “도로 내는 일을 기획할 때 역사적인 문화재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요.” 이미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사적지 붕괴가 예상되는 도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청장은 가야산 능선 따라 서게 될 고압송전철탑들은 더 심각하지만 그것은 문화재청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환경부는 뭐 하는가? 온화한 기풍으로 당당한 이 산 곳곳에 고압송전철탑이 세워지는데. 그토록 아름다웠던 곳이 걷잡을 수 없이 황폐하게 파헤쳐져 있는 걸 보노라면 정말 비통해진다. 저리도 흉물스러운 것이 육중하기까지 하니 저 송전철탑과 비교하면 조선인들의 기를 빼겠다고 일본인들이 박아 넣은 쇠말뚝은 그래도 애교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경제논리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지. 이제 모든 개발의 중심에는 문화가치, 생명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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