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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2006-11-05)[이덕일 사랑]폐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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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7-06 23:41 조회7,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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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teLink #1 : 조선일보 2005-11-05 이덕일·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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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사랑]폐사지에서

[조선일보]

명당으로 유명한 충남 덕산의 남연군묘 옆의 비포장길을 걸어서 운산으로 가면 백제 마애삼존불 근처에 보원사지(普願寺祉)가 나온다. 현재는 폐사지만 고대에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로·무역로로 번성했던 곳이다. 법인국사(法印國師) 탑비에는 보원사가 전성기 때 1000명의 승려와 1000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기록된 대찰이다. 보원사지뿐만 아니라 강원도 원주 부론면의 거돈사지와 법천사지,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전남 강진의 월남사지 등 폐사들은 찬연한 국보나 보물 한두 점씩을 갖고 있으며 평지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낙엽 지는 가을날 이런 폐사를 거닐면 조선 중기 학자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대흥폐사(大興廢寺)’란 시구가 절로 떠오른다.


‘염불 소리 끊긴 지 오랜 불전엔/ 놀러 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뜨락엔 붉은 낙엽 가득 쌓이고/ 가을의 석양빛만 홀로 비추네.”(古殿無僧語/ 遊人到亦稀/ 滿庭紅葉積 /秋日自斜暉)


이런 대찰들이 폐사가 된 것은 역설적으로 불교가 너무 흥성했기 때문이다. 2800간(間)에 달했던 고려 최대의 사찰 흥왕사(興王寺)에서 공민왕이 김용(金鏞)에게 암살된 것은 고려 불교와 권력의 얽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경에만 70여 개가 있었다는 대찰들은 고려 후기 유학자들의 비판 대상이 되어 목은 이색의 “불교의 오교양종(五敎兩宗)이 모리배의 소굴이 되고 강가건 산속이건 절이 없는 곳이 없다”라는 비판과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을 낳았다. 조선 유학자들의 탄압으로 산중(山中)으로 쫓겨 들어간 것이 불교를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역설이 아니라 공(空)의 추구가 불교의 본질이란 점에서 오히려 자연스럽다.


새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지관 스님이 평생을 일관했던 학승의 면모로 조계종의 선종(禪宗) 정신, 산중 정신을 되새김으로써 한국 불교의 물질이 아니라 정신을 부유케 하기를 바란다. 속도와 직선으로 매진했던 20세기가 느림과 곡선의 21세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덕일·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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