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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2005-08-24) 빈 절터 법으로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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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7-08 11:31 조회6,7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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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05-08-2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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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절터에 돌멩이가 나뒹굴고 잡초가 무성하다. 그나마 남은 주초(돌기둥)를 밤새 굴착기로 뽑아가는 이들도 있다. 전국의 폐사지(廢寺址·버려진 절터)는 줄잡아 2000곳. 이 가운데 사적이나 시·도 기념물로 지정된 100여곳만 법의 보호를 받고 있을 뿐, 나머지 절대 다수의 폐사지가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날로 훼손되고 있다. 무너져 천년을 적정 삼매에 잠긴 절터지만, 붓다의 가르침이나 민족 혼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불교계 숙원사업이었던 폐사지 보호 법안이 불교계와 정치권에 의해 추진된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법장 스님)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측은 9월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폐사지 보존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찰과 관련된 현행 법안은 문화재보호법과 전통사찰보존법 등이 있는데, 전통사찰보존법은 사찰 기능이 유지되는 곳만 적용되고, 문화재보호법은 미지정 폐사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조계종과 박 대표 측은 특별법 제정과 전통사찰보존법 개정을 놓고 조율하다 후자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폐사지를 보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폐허가 된 문화재는 고궁, 성곽 등 다른 유적도 많아 폐사지 하나만을 가지고 법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사찰보존법에 폐사지 보호 내용을 넣어 개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폐사지 법안 마련은 불교 진각종 진각복지재단 사무처장이자 시인인 장지현씨가 쓴 ‘잊혀진 가람 탐험’(여시아문 펴냄)이 기폭제가 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장씨는 책에서 국내 35곳의 폐사지를 소개하며 “빈 절터는 있는 그 자체만으로 제행무상과 윤회 등 모든 불교 이치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수행공간인데, 자꾸 망가지거나 졸속으로 복원되고 있다”며 ‘폐사지 보존 특별법’의 제정을 정부에 촉구한 것이다. 이 사연은 세계일보(6월16일자 24면)에도 소개됐다. 박 대표는 본지 기사를 스크랩해 장씨를 찾았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는 그날 이후 보좌관을 매주 한 차례씩 장씨와 만나게 해 법안 마련이 급물살을 탔다.

장 처장은 “세계일보를 읽었다는 박 대표가 폐사지 보존 특별법에 관심을 보이며 전화를 걸어와 깜짝 놀랐다”며 “박 대표도 평소 폐사지가 바람직한 보존 방향으로 가기 위한 법 제정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가 책을 통해 제시한 폐사지 보호는 복원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보존에 있다. 성급한 복원은 역사성을 훼손할 수 있고, ‘만인의 사적지’를 ‘불자만의 공간’으로 가둬 둘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법 개정의 골격도 복원보다 보존에 맞춰질 전망이다. 장씨는 폐사지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되 폐사지 옆에 관리사찰을 짓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조계종도 장씨의 주장에 공감했다고 한다.

실제 불교신문이 금강산 신계사지, 양양 진전사지, 충주 미륵사지 등을 복원 모범사례로 꼽은 반면에 청주 흥덕사지, 서산 보원사지 등을 실패 사례로 분류한 바 있어 장씨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조계종이 조사한 ‘전국 불교 사원지 현황’(1999)에 따르면 전국의 폐사지는 2141곳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지표조사가 진행된 곳은 전체의 58.1%에 해당하는 1245곳, 발굴조사를 한 곳은 48곳이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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