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02-06-28) <신간>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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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7-06 23:32 조회6,867회 댓글0건본문
: 연합뉴스 2002-06-28 김태식기자
<신간>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이성시(李成市.50) 교수는 1994년 8월 일본 최고의 학술잡지 「사상」 842호에 '표상으로서의 광개토왕비문'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서 이 교수는 일본 동양사학의 비조로 통하는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1865-1942)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왕비를 일본 제실박물관으로 옮기려 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렇다면 시라토리는 왜 비문을 옮기려 했을까. 시라토리에게 비문은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게 자랑스러운 증거가 아니라고구려에 패했음을 증명하는 몹시도 원통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이에 그는 이 비문을 통해 일본 국민에게 고대 일본이 고구려에 패한 교훈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서울 경복궁 안 국립중앙박물관 뒤뜰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탑이나 탑비 같은 석조문화재가 야외에 전시돼 있다. 그 대부분은 식민통치기에 서울로 옮겨진 것이다. 이곳에는 1919년 3월 경남 창원 봉림사라는 절에서 옮겨다 놓은 것으로 알려진진경대사 사리탑과 진경대사 탑비가 있다. 이 탑과 탑비는 왜 이동했을까?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증권사를 거쳐 현재 투자자문회사에 근무하는 이순우(40)씨. 주식투자에 관한 단행본 몇 종을 출간한 그로서는 다소 이색적이게도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 하나」(하늘재)라는 단행본을 들고 나왔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 "문화재는 쥐뿔도 모르는" 이씨가 집필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대한 조사보고이다. 한데 그 성과가 경악이다. 각 문화재별 별의별 문건들(대부분 일본어로 돼 있다)을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문화재의 이동경로와 시기 및 그 이유를 추적한다. 이러한 이씨의 작업을 통해 이들문화재에 관한 통설이 오류 투성이임이 드러나고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진다. 예컨대 진경대사 탑비가 봉림사를 떠난 이유도 마침내 폭로된다. 스와 다케호네라는 일본인이 1927년에 쓴 글 '임나(任那)의 존재를 증명하는 봉림사터의 옛 비석, 창덕궁 안 총독부박물관에 위관(威觀)을 더하다'라는 글이 의문을 푸는 열쇠 구실을 한다. 이 탑비는 신라말 고승인 진경대사가 임나(즉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이라는 구절이 있음을 근거로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에 있었음을 보이는 일대 증거로 평가됐던것이며 이런 까닭으로 서울로 옮겼음을 스와의 글은 증명하고 있다. 이씨의 '조사보고서'는 이것 말고도 염거화상탑, 천수사 삼층석탑, 보원사지 철불,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의 위치이동과 그 시기 및 배경 등을 철저한 문건자료 분석을 토대로 접근하고 있다. 296쪽. 1만2천원. taeshik@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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