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암벽을 파내어 부조로 조각된 삼존불상 | | ⓒ 조선희 | | 푸근한 대학 친구가 서산에 연구실을 가지고 있어 동창 몇 명이 주말을 그곳에서 보냈다. '게'가 마지막 철이라고 하여 갔었는데…. 정말 어찌나 크고 알이 꽉 찼던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싱싱한 조개탕과 소주를 곁들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3년 전 친구들과 함께 마애삼존불상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못 가본 친구가 있어 다음 날 아침 자애로운 미소를 자랑한다는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용현리로 이동하였다.
| | ▲ 들어가는 입구의 삼불교 | | ⓒ 조선희 | | 예전에 왔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들어가는 초입에서부터 시설을 보완한 것 같았다. 산림욕을 즐기면서 돌계단을 조금 오르니 어느덧 입구가 보인다. 마애삼존불 관리사무실 마루턱에는 이곳을 알리는 안내 리플릿이 놓여 있었는데 파란색의 구조물이 주변과는 동떨어진 질감과 색상이어서 아쉬움을 주었다.
| | | | ⓒ 조선희 | | 관리사무실을 지나 다시 돌계단을 조금 내려오니 앞에 암벽 밑으로 삼존불상을 모신 곳이 눈에 띄었다.
| | | | ⓒ 조선희 | | 서산마애삼존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달리 보이는, 가야산의 끝자락인 수정봉 북쪽 산중턱에 위치한 커다란 암벽을 안쪽으로 파내고 들어가 부조형식으로 조각된 삼존 불상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얼굴 가득한 미소는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유쾌한 미소는 '백제의 미소'라 명명 되었다.
| | | | ⓒ 조선희 | | 석가여래입상은 머리 뒤에 보주 형 광배와 초승달 같은 눈썹, 미소 짓는 그 입술이 친근감을 주는데 이 부처는 조각도 잘 됐지만 진가는 이 웃음에 있다고 한다.
석가여래입상의 두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양팔에 걸쳐 평행호선으로 길게 주름져 있어 입체감을 느끼게 했다. 활짝 웃고 있는 유쾌한 얼굴은 독특하고 참신한 개성미를 보여줬으며, 백제인의 쾌활한 장자풍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 | ▲ 선가여래입상 | | ⓒ 조선희 | | 좌측의 제화갈라보살입상은 흔치 않은 보살로 석가에게 성불하라는 수기를 준 과거불인 연등불의 보살일 때 이름이며 그 웃음 역시 일품이다. 이 부처의 티 없이 맑은 웃음도 역시 다른 부처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상이라고 한다. 흔히 보관에 화불이 있다 하여 관음보살이라고도 하나 법화경사상에 의하여 제화갈라보살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한다.
| | ▲ 제화갈라보살입상 | | ⓒ 조선희 | | 우측의 미륵반가사유상은 166cm의 크기로 살이 통통하게 찐 소년적인 체구를 가졌다. 이런 부처의 배열은 이곳 밖에 없다고 한다.
| | ▲ 미륵반가사유상 | | ⓒ 조선희 | | 마애삼존불상은 6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것은 1962년이다. 삼존불상의 배치는 중앙에 석가여래 입상, 좌측에 제화갈라보살 입상, 우측에 미륵반가사유상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3세불 형식으로 두 입상에 하나의 반가상이 있어 독특한 배치라고 한다.
| | ▲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지는 삼존불상 | | ⓒ 조선희 | | 화강암을 파내어 암벽 안쪽에 조각되어 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 정말로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미소가 달라 보였다. 우리의 조상, 백제인들의 기술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낸다.
| | | | ⓒ 조선희 | | 이 부근에는 '마애삼존불상'외에도 백제불교문화의 유적지인 보원사지도 있다. 다음 동창 모임 때에는 서산 근처의 유적지를 살펴보기로 하고 우리는 부지런히 다음 행선지인 덕산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