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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2005-12-18)눈보라 치는 날, 보원사지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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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7-08 23:14 조회8,6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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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치는 날, 보원사지를 찾아가다
서산 보원사지와 마애삼존불을 찾았습니다
btn_send.gifbtn_print.gif텍스트만보기btn_blog.gif btn_memo_send.gif 문일식(mis71) 기자




지난 12월 17일 충남 예산에서 친구 결혼식이 오후 4시에 잡혀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몸살 앓는게 싫어 오전에 출발했더니 시간이 남았습니다. 오랜만에 서산에 들러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를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서해대교를 지나 당진에 들어서니 눈이 하늘하늘 내리기 시작했고 서산에 도착하니 모든 풍경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눈은 더욱 거칠게 내리기 시작했고 운전이 꽤 조심스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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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마애삼존불로 가는 도로. 고풍 저수지 아래 새로 난 길이다.
ⓒ 문일식
해미로 가는 647번 지방도에서 서산 마애삼존불로 가다 보면 숨은 보석과 같은 고풍 저수지가 나오게 되는데 그동안 새로운 길이 뚫린 것 같습니다. 널찍한 4차선 도로가 개통되었고 새로운 도로 위쪽으로 고풍 저수지의 풍광을 감상하던 옛 길이 있었습니다. 고풍 저수지를 보려면 차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눈길에 엄두가 나지 않아 이내 포기하고 마애삼존불로 바로 향했습니다.

보원사지를 먼저 찾았습니다. 절의 창건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꽤나 번성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많은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폐사지입니다. 유난히 겨울에 많이 찾았던 곳입니다. 돌이켜 보면 눈이 있는 풍경과 함께했던 기억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아름다운 설경이 가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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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보원사지의 설경
ⓒ 문일식
대설주의보가 이곳 서산까지 영향을 미친 모양입니다. 차에서 내리자 눈발이 온몸을 덮고 매서운 추위가 살 속 깊이 파고 들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적막한 보원사지였습니다. 나만의 세상, 나 혼자 차지하고픈 욕심쟁이의 모습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밟으면서 느끼는 희열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산속에서 우짖던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도 갈수록 거칠어지는 눈발 속에 잦아들고 보원사지에는 매서운 바람소리와 눈길을 밟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당간지주였습니다. 당간지주의 뒷편으로는 5층석탑과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 있었고 석조는 오늘도 숨박꼭질을 하듯 어딘가에 숨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당간지주에 앉아 커피 한잔 끓여마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런 낭만을 즐기기에는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낭만보다는 아무도 걷지 않았던 소복한 눈길을 마음껏 걷는 것이 더 큰 낭만이었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미친듯이 눈길을 달리고 뒹굴어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는 보원사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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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원사지의 보물 104호 5층 석탑의 전경
ⓒ 문일식
작은 내를 건너 5층 석탑과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있는 너른 평지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언제 보아도 듬직한 5층 석탑의 지붕돌에는 아직 녹지 않은 옛 눈위에 또 다시 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눈내리는 날씨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찰주와 평평하게 내려오다가 살짝 하늘을 향해 솟은 지붕돌의 모습이 유난히 돋보였습니다.

5층 석탑의 상하층 기단부에는 각각 팔부중신과 사자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마치 숨은 그림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보면 어느새 윤곽이 나타나고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지면 마치 숨은 그림을 찾아낸 것처럼 기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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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진 시간만큼이나 눈에 잠겨 있는 보원사지의 옛 석물 부재들
ⓒ 문일식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를 찾아가는 길에는 예전에 쓰였던 석물들이 널려 있습니다. 당간지주나 석탑이나 부도, 부도비 등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해진 보물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행색이 초라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그저 돌들입니다. 그 옛날 호화스럽던 당시에는 한 몸을 이루며 당당하게 서 있었을 듯한데, 그 오랜 세월 잊혀진 것처럼 오늘도 내리는 눈에 몸을 감추며 그렇게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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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106호로 지정된 법인국사 부도비의 전경
ⓒ 문일식
법인국사는 고려초의 고승으로 광종 때 왕사가 되었고 은퇴하면서 국사가 되어 이곳 보원사에서 열반한 고승입니다. 법인국사 부도비에는 그러한 내력이 적혀 있으니 고려초에 조성연대가 분명한 유물이기도 합니다. 까만 대리석에 빼곡이 글씨가 새겨져 있고, 이수에는 사방에서 용이 모여드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용의 모습입니다. 생각보다 큰 머리의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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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국사 부도의 중대석 받침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
ⓒ 문일식
바로 옆에는 법인국사의 부도가 서 있습니다. 8각 원당형으로 5m에 육박하는 크기로 부도의 온 몸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가득합니다. 5m에 육박하는 크기이지만 날씬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단에는 안상을 깊게 새긴 자리에 사자상을 새겼는데 오층석탑의 그것보다는 윤곽도 뚜렷하고 사납고 입체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팔각의 밋밋한 중대석을 제외하면 수많은 공력을 들여 새긴 아름다운 흔적들이 남아 있어 꽤나 긴 시선을 주게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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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원사지 설경 속 5층 석탑
ⓒ 문일식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까지 둘러보고 나서야 아래로 펼쳐진 하얀 풍경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하얗게 잠겨버린 폐사지, 그 위에 서 있는 나의 모습, 아무도 없는 황량하기까지 한 벌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오직 나 혼자만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흩날리는 눈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비발디 <사계>의 겨울 2악장에서 상상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하얗게 서서히 잠겨가는 보원사지의 모습이 왠지 마음 한구석을 저리게 했습니다.

보원사지는 사적 361호로 지정되어 있고 석조가 보물102호, 당간지주가 보물 103호, 오층석탑이 보물 104호,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각각 보물 105,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보물의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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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삼존불을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불이문
ⓒ 문일식
아쉬운 발걸음은 서산 마애삼존불로 향했습니다. 가파른 계단이 있어 발길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조금만 잘못 디디면 그야말로 큰일 날 곳입니다. 불이문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불이문. 해탈문이라고 불리는 이 문은 말 그대로 속세와 구별되는 해탈의 경지인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뵈려 가는 그 길에 잠시 속세와 이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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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삼존불(국보 84호)의 전경
ⓒ 문일식
언제인가 올해내로 마애삼존불을 감싸는 전각을 철거한다는 기사를 읽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그대로였습니다. 전각안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 마애삼존불의 모습은 역시 변함이 없었습니다. 얼굴이 검어진 듯도 하지만 변함없는 미소였습니다. "예전 일은 잘 되었느냐" "네 그럼요" 몇년전 마애삼존불 앞에서 힘겨운 모습으로 찾아뵙자 따뜻한 미소로 답을 주셨던 그때 이후를 기억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이제 전각이 철거되면 그동안 받지 못한 햇살을 받고 더 큰 미소를 머금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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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자나불이 없어진 모습과 사라진 비로자나불
ⓒ 문일식
모든 사람에게 평온함을 변함없이 던져주길 빌며, 잠시간의 해후를 마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내려가는 도중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되짚어 가보니 있어야 할 것이 하나가 없었습니다. 불이문과 마애삼존불 사이에 찾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작은 비로자나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문화재 분실이 많다고 하는데 혹시나 누군가 훔쳐간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아니면 보호 차원에서 어디다 가져다 둔 것인지.

잠시 들러볼 요량으로 찾은 보원사지와 마애삼존불에서 뜻하지 않은 풍경과 감동,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뜻하지 않은데서 오는 것들이 아닌가 합니다. 예산까지 가는 한적한 도로를 거북이 걸음으로 가야했지만 아스라한 하얀 풍경이 머리속에 가득하기만 했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를 다니는 길에 옛 해미현에 거주하던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지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새긴 방선암과 마애삼존불 들어오는 입구 돌무더기 위에 세워진 미륵불도 있으니 잠시 내려 둘러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pcsafer.gif 2005-12-18 13:02
ⓒ 2006 OhmyNews
서산 보원사지와 마애삼존불을 찾았습니다
btn_send.gifbtn_print.gif텍스트만보기btn_blog.gif btn_memo_send.gif 문일식(mis71) 기자




지난 12월 17일 충남 예산에서 친구 결혼식이 오후 4시에 잡혀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몸살 앓는게 싫어 오전에 출발했더니 시간이 남았습니다. 오랜만에 서산에 들러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를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서해대교를 지나 당진에 들어서니 눈이 하늘하늘 내리기 시작했고 서산에 도착하니 모든 풍경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눈은 더욱 거칠게 내리기 시작했고 운전이 꽤 조심스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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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마애삼존불로 가는 도로. 고풍 저수지 아래 새로 난 길이다.
ⓒ 문일식
해미로 가는 647번 지방도에서 서산 마애삼존불로 가다 보면 숨은 보석과 같은 고풍 저수지가 나오게 되는데 그동안 새로운 길이 뚫린 것 같습니다. 널찍한 4차선 도로가 개통되었고 새로운 도로 위쪽으로 고풍 저수지의 풍광을 감상하던 옛 길이 있었습니다. 고풍 저수지를 보려면 차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눈길에 엄두가 나지 않아 이내 포기하고 마애삼존불로 바로 향했습니다.

보원사지를 먼저 찾았습니다. 절의 창건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꽤나 번성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많은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폐사지입니다. 유난히 겨울에 많이 찾았던 곳입니다. 돌이켜 보면 눈이 있는 풍경과 함께했던 기억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아름다운 설경이 가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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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보원사지의 설경
ⓒ 문일식
대설주의보가 이곳 서산까지 영향을 미친 모양입니다. 차에서 내리자 눈발이 온몸을 덮고 매서운 추위가 살 속 깊이 파고 들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적막한 보원사지였습니다. 나만의 세상, 나 혼자 차지하고픈 욕심쟁이의 모습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밟으면서 느끼는 희열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산속에서 우짖던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도 갈수록 거칠어지는 눈발 속에 잦아들고 보원사지에는 매서운 바람소리와 눈길을 밟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당간지주였습니다. 당간지주의 뒷편으로는 5층석탑과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 있었고 석조는 오늘도 숨박꼭질을 하듯 어딘가에 숨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당간지주에 앉아 커피 한잔 끓여마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런 낭만을 즐기기에는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낭만보다는 아무도 걷지 않았던 소복한 눈길을 마음껏 걷는 것이 더 큰 낭만이었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미친듯이 눈길을 달리고 뒹굴어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는 보원사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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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원사지의 보물 104호 5층 석탑의 전경
ⓒ 문일식
작은 내를 건너 5층 석탑과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있는 너른 평지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언제 보아도 듬직한 5층 석탑의 지붕돌에는 아직 녹지 않은 옛 눈위에 또 다시 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눈내리는 날씨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찰주와 평평하게 내려오다가 살짝 하늘을 향해 솟은 지붕돌의 모습이 유난히 돋보였습니다.

5층 석탑의 상하층 기단부에는 각각 팔부중신과 사자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마치 숨은 그림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보면 어느새 윤곽이 나타나고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지면 마치 숨은 그림을 찾아낸 것처럼 기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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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진 시간만큼이나 눈에 잠겨 있는 보원사지의 옛 석물 부재들
ⓒ 문일식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를 찾아가는 길에는 예전에 쓰였던 석물들이 널려 있습니다. 당간지주나 석탑이나 부도, 부도비 등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해진 보물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행색이 초라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그저 돌들입니다. 그 옛날 호화스럽던 당시에는 한 몸을 이루며 당당하게 서 있었을 듯한데, 그 오랜 세월 잊혀진 것처럼 오늘도 내리는 눈에 몸을 감추며 그렇게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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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106호로 지정된 법인국사 부도비의 전경
ⓒ 문일식
법인국사는 고려초의 고승으로 광종 때 왕사가 되었고 은퇴하면서 국사가 되어 이곳 보원사에서 열반한 고승입니다. 법인국사 부도비에는 그러한 내력이 적혀 있으니 고려초에 조성연대가 분명한 유물이기도 합니다. 까만 대리석에 빼곡이 글씨가 새겨져 있고, 이수에는 사방에서 용이 모여드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용의 모습입니다. 생각보다 큰 머리의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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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국사 부도의 중대석 받침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
ⓒ 문일식
바로 옆에는 법인국사의 부도가 서 있습니다. 8각 원당형으로 5m에 육박하는 크기로 부도의 온 몸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가득합니다. 5m에 육박하는 크기이지만 날씬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단에는 안상을 깊게 새긴 자리에 사자상을 새겼는데 오층석탑의 그것보다는 윤곽도 뚜렷하고 사납고 입체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팔각의 밋밋한 중대석을 제외하면 수많은 공력을 들여 새긴 아름다운 흔적들이 남아 있어 꽤나 긴 시선을 주게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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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원사지 설경 속 5층 석탑
ⓒ 문일식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까지 둘러보고 나서야 아래로 펼쳐진 하얀 풍경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하얗게 잠겨버린 폐사지, 그 위에 서 있는 나의 모습, 아무도 없는 황량하기까지 한 벌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오직 나 혼자만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흩날리는 눈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비발디 <사계>의 겨울 2악장에서 상상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하얗게 서서히 잠겨가는 보원사지의 모습이 왠지 마음 한구석을 저리게 했습니다.

보원사지는 사적 361호로 지정되어 있고 석조가 보물102호, 당간지주가 보물 103호, 오층석탑이 보물 104호,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각각 보물 105,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보물의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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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삼존불을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불이문
ⓒ 문일식
아쉬운 발걸음은 서산 마애삼존불로 향했습니다. 가파른 계단이 있어 발길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조금만 잘못 디디면 그야말로 큰일 날 곳입니다. 불이문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불이문. 해탈문이라고 불리는 이 문은 말 그대로 속세와 구별되는 해탈의 경지인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뵈려 가는 그 길에 잠시 속세와 이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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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삼존불(국보 84호)의 전경
ⓒ 문일식
언제인가 올해내로 마애삼존불을 감싸는 전각을 철거한다는 기사를 읽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그대로였습니다. 전각안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 마애삼존불의 모습은 역시 변함이 없었습니다. 얼굴이 검어진 듯도 하지만 변함없는 미소였습니다. "예전 일은 잘 되었느냐" "네 그럼요" 몇년전 마애삼존불 앞에서 힘겨운 모습으로 찾아뵙자 따뜻한 미소로 답을 주셨던 그때 이후를 기억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이제 전각이 철거되면 그동안 받지 못한 햇살을 받고 더 큰 미소를 머금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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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자나불이 없어진 모습과 사라진 비로자나불
ⓒ 문일식
모든 사람에게 평온함을 변함없이 던져주길 빌며, 잠시간의 해후를 마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내려가는 도중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되짚어 가보니 있어야 할 것이 하나가 없었습니다. 불이문과 마애삼존불 사이에 찾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작은 비로자나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문화재 분실이 많다고 하는데 혹시나 누군가 훔쳐간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아니면 보호 차원에서 어디다 가져다 둔 것인지.

잠시 들러볼 요량으로 찾은 보원사지와 마애삼존불에서 뜻하지 않은 풍경과 감동,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뜻하지 않은데서 오는 것들이 아닌가 합니다. 예산까지 가는 한적한 도로를 거북이 걸음으로 가야했지만 아스라한 하얀 풍경이 머리속에 가득하기만 했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를 다니는 길에 옛 해미현에 거주하던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지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새긴 방선암과 마애삼존불 들어오는 입구 돌무더기 위에 세워진 미륵불도 있으니 잠시 내려 둘러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pcsafer.gif 2005-12-18 13:02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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