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가, 태고의 전설ㆍ민중의 숨소리가…(대전일보 0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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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1 작성일06-12-21 00:45 조회7,081회 댓글0건본문
들리는가, 태고의 전설ㆍ민중의 숨소리가… | ||
[대전일보 2006-12-19 23:33] | ||
(中)역사·문화의 보고 충남의 기맥, 금북정맥은 충남지역 역사·문화의 보고다. 남으로 뻗어 내리다가 다시 북으로 치솟고 황해의 푸른 물결을 탐내듯 서해로 굽이치는 금북정맥은 수 만년 동안 축적된 태고의 전설과 민중의 애환이 서린 설화를 보듬고 있다. 그 도도한 산줄기와 수 천 갈래의 산자락에는 한마디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역사·문화가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다. 백제문화의 중심지이자 내포문화의 발상지이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문화유산은 금북정맥이 지니는 총체적 역사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려의 흔적을 찾아서
금북정맥의 들머리인 찰장산에는 칠장사가 서남쪽의 산줄기를 굽어보듯 자리하고 있다. 10세기경 혜소국사가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해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임꺽정의 스승인 갖바치가 머문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됐다가 중건되는 등 수난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 곳에는 안성 봉업사 석불 입상(보물 제983호)과 오불회 괘불탱(국보 제296호), 삼불회 괘탱화(보물 제1256호) 등 보물과 국보급 유적들이 소장돼 있다.
천안의 금북정맥 줄기로 들어서면 만일사와 천흥사 터 등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천안의 명산인 성거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만일사는 고려 태조때 비보사찰(俾補寺刹)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 뒤편의 마애불이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만일사 오층석탑과 마애불은 충남도 문화재 자료로 등록돼 있다. 성거산은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산이지만 지금은 정상 부근에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미관을 헤치고 있다.
천안 성거읍 천흥리에는 고려사찰 가운데 매우 큰 규모를 자랑했던 천흥사지터가 있다. 천흥사 동종이 국보로, 오층석탑과 당간지주 등이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당시 절의 움장함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저수지 공사로 많은 부분이 유실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서산의 금북정맥 산줄기에는 보원사지가 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절은 6점의 석조 유물이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성을 자랑한다. 보원사지 내에 100여개의 작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하니 절의 움장함을 상상하게 한다. 현재는 마을과 목장, 도로들이 절터를 장악해 유물들만 덩그라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설상가상으로 보원사지터는 가야산 순환도로 개설 계획으로 또 다시 수난을 당할 처지다.
#백제 역사의 현장
천안의 마루금을 밟는 순간 저 멀리서 백제군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한양에서 남하해 초기 도읍지로 삼았다는 천안 위례성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백제 건국 13년에 천안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설이 정설이라면 백제 고도의 시작은 이 곳 천안의 금북정맥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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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입장면과 북면의 경계에 위치한 위례성은 백제 성의 위용을 품고 있다. 성내 면적이 5700평, 성채의 길이는 900m 정도나 된다. 천안의 진산인 성거산에는 위례성의 익성(翼城, 날개처럼 좌우 양쪽에 쌓아서 가운데 있는 성의 부족한 기능을 돕는 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백제 도읍지의 범위가 성거산까지 폭 넓게 뻗쳐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연기군의 금북정맥 산줄기에는 고려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도성이 무너진 후 백제 부흥군이 3년여에 걸쳐(서기 660-663년) 항쟁한 본거지이기도 했다.
예산 대흥면 상중리에는 임존성이 있다. 임존성은 백제시대에 수도 경비의 외곽 기지였으나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했다. 다시 후삼국시대에는 견훤과 왕건이 세력 다툼을 별였던 역사의 현장이다.
#내포문화의 생태축
금북정맥은 내포문화의 생태축이기도 하다. 보령과 청양의 경계 있는 백월산과 보령의 오서산, 홍성의 일월산, 예산의 덕숭산과 가야산, 서산의 성왕산과 팔봉산, 금북정맥의 가장 서쪽에서 황해를 굽어보고 있는 태안의 지령산에 이르기까지 금북정맥은 내포문화권의 강과 포구와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공주와 아산, 예산의 삼남 분기인 봉수산을 중심으로 가야산까지 U자형을 이루는 금북정맥은 내포문화권의 생태축으로서 그 가치가 높다. 그 중 예산은 금북정맥의 대표적인 명산인 가야산을 중심으로 내포문화와 불교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당진을 통해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다양한 문화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바다에서부터 깊숙한 내륙지역까지 이어지는 물길은 서해 운송로의 역할을 하며 불교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정착했고 이러한 영향을 받아 수덕사, 보원사 등 유구한 역사의 사찰들이 금북정맥의 마루금에서 터를 잡고 있다.
외국 문물의 유입 통로인 태안반도에는 안전한 운송을 비는 마애불들이 많다. 태안 백화산의 마애삼존불, 서산의 마애삼존불 등이 금북정맥의 마루금 인근에서 풍요와 태평을 기원하듯 천 년 세월을 지켜왔다. 특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의 후덕한 인상과 순수한 미소는 풍요의 땅인 내포지역의 사회·역사적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애환의 서린 고갯길
삼남의 관문인 충남은 예로부터 교통의 상업의 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금북정맥의 수 많은 고개는 물자를 싣고 오가는 이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고개가 차령고개다. 차령고개는 공주에서 천안으로 통하는 가장 큰 고개로서 서울과 남도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고개였다.
공주 정안면 신성리에서 천안 광덕면 광덕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곡두재가 있다. 공주에서 곡두고개로 오르기 전에는 ‘주막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곡두재를 넘기 전에 쉬어가던 과거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듯하다.
보령 청라면의 스무재는 청양군 화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이 곳을 거쳐 예산으로 가려면 80리길을 걸어야 했다. 고개가 높고 험해서 행인을 괴롭히는 도적들이 우글거렸고 이 때문에 이 고개를 넘을 때에는 장정 20여명이 몰려서 넘었다하여 스무재이다.
공주 유구읍과 예산 신양면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차동고개가 있다. 차서방이 몸져 누운 어머님을 위해 산신령으로부터 산삼을 얻은 고개라 하여 차동고개라 불린다.
이처럼 금북정맥의 마루금은 옛 선조들의 삶의 채취와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절, 산악지역을 넘나들며 문물을 교류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했던 고갯길을 따라 걷다보면 금북정맥은 단지 충청의 자연환경을 이루는 산줄기에 그치지 않고 충남의 역사 및 정신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생활축임을 느끼게 된다. <정리=李龍 기자·이상희 대전·충남 녹색연합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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