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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훔쳐간 문화재 소장한 프랑스 꼴-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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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8-24 19:24 조회6,9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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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훔쳐간 문화재 소장한 프랑스 꼴
조계종 VS 삼성문화재단 `사리전쟁`…"종단차원 거시적 대안 절실"

현등사(경기 가평)와 삼성문화재단이 소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현등사 사리구’에 대해 대한불교 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럽다.


불교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대처키로 한 것은 현등사가 삼성문화재단 소장 사리구에 대해 지난해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7월 20일 서울서부지법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조계종은 8월 2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대한불교조계종 현등사 사리 제자리 찾기 추진위원회’(추진위) 발족식을 가졌다.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철안(봉선사)·원담(조계사) 스님이, 실행위원회 위원장은 현등사 주지 초격 스님이 맡았다. 추진위원과 실행위원은 중앙종회의원 80명을 비롯, 총무원 집행부 스님 등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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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위는 ‘현등사 사리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란 성명서를 통해 “현등사 삼층석탑에 1470년에 봉안된 사리와 사리구는 정확한 일자를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 도난당했다”며 삼성문화재단의 반환을 촉구했다. 추진위는 또 “서울 서부지법의 판결은 조계종의 법통을 부정하는 몰역사적인 것”이라며 “사리와 사리구가 반환될 때까지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현등사-사리구의 인연 "현등사 소유 분명하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했다.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재건했고 사리구를 봉안했던 현등사 석탑은 현재 시도유형문화재 63호로 고려후기에 세워졌다. 사리구는 1470년 탑을 고쳐 지을 때 봉안했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영응대군의 부인 사위 딸이 시주했다고 사리구에 각인돼 있다.


공주교도소에 복역중인 도굴꾼 서모(40)씨에 따르면 1980년 4명이 탑을 해체하고 사리구를 훔쳐간다고 한다. 서씨는 자신의 범행사실을 참회하는 내용의 편지를 조계종총무원에 보냈다. 그는 종단이 원할 경우 증인으로도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삼성문화재단이 같은 해 이를 구입,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 중이다.

사리구의 사리합 표면에는 현등사 소유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사리합 뚜껑에 접한 부분부터 아래로 다음과 같이 사리구를 봉안하게 된 장소와 경위를 음각해놓았다.


成化六年庚寅三月日(성화육년경인삼월일)
願堂雲岳懸燈寺塔改造(원당운악산현등사탑개조)
捨利五枚安邀(사리오매안요)
大施主 帶方府夫人 宋氏女子(대시주 대방부부인 송씨여자)
吉安縣主 李氏億千(길안현주 이씨억천)
折衝將軍 中樞府僉知事 具壽永(절충장군 중추부첨지사 구수영)


법원, 현등사ㆍ회암사 문화재소송서 '이중잣대'

'사리구 소송' 1심 판결 선고문은 사리구가 삼성문화재단 소유임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이유를 들었다.


"구(옛) 현등사는 고려 제21대 희종(재위 1204-1211) 때 보조국사 지눌이 새로이 지었다고 하고, 1829년(순조 29년)에는 화재로 건물이 전소된 바 있다고 하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대참화를 거쳤다.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시대 400여년 동안을 사찰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로 존속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 일본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이어 해방 이후에도 불교교단의 통폐합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사찰의 물적ㆍ인적요소에 커다란 변혁이 수없이 이루어져 왔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원고(현등사)는 비록 구 현등사와 그 명칭이 같다 하더라도 그와는 다른 별개의 권리주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므로(중략) 구 현등사 소유의 이 사건 사리구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다."


사리구가 현등사(판결문 표현을 빌면 구 현등사) 것임은 인정하되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 말사인 현등사가 비록 명칭은 같지만 현등사 삼층석탑이 수리되던 그 시대인 조선 초기의 현등사와는 별개라는 것이다.

20060824150937_0.jpg빛을 내뿜고 있는 현등사 사리의 모습. 부처님 진신사리로 추정된다. / 사진제공 혜문스님


그런데 의정부지법 제12민사부는 2월 1일 이와 흡사한 사건에 대해 정반대의 판결을 했다.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회암사 터 출토 유물 환수 소송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문화재청이 국가 소유로 처리한 회암사 터 출토유물이 현재의 회암사라는 절 소유이므로 이를 돌려주라고 한 것이다.


이 재판에서 문화재청은 삼성문화재단이 현등사에 대해 내세운 것과 거의 똑같은 논리로 맞섰다. 문화재청은 "원고(지금의 회암사)는 조선 후기에 완전히 폐사된 구 회암사와 관련 없이 최근에 새로이 만들어진 사찰이므로, 구 회암사와 연관되어 있는 이 사건 문화재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회암사가 고려시대에 지어져 고려말-조선초기에 왕실사찰로 번성했으며,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문화재 대부분이 그 시대에 남겨진 것들인 반면, 지금의 회암사와 그 시대 회암사는 이름과 장소가 같을 뿐, 아무런 계승 관계가 없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반박 요지였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현재의 회암사)가 오래 전부터 선각왕사비, 석등, 당간지주, 삼화상 부도 등에 대하여 소유권을 행사해온 것이 누구로부터 매수하거나 증여받은 등의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 회암사와의 동질성 내지 그 계승자임을 사회적, 지역적, 문화적으로 승인"받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소유권 다툼과정에서 회암사 출토유물과 상반되는 현등사 석탑 사리구에 관한 법원의 판결은 이중적 잣대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사법부의 불신을 조장한 것으로 불교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법원, 불교 정통성·영속성·법통마저 부정했다"


불자들이 법원의 판결에 분노하는 것은 이중잣대보다는 불교의 법통을 부정했다는 점이다.


이번 판결문에서 "현등사는 본사가 아닌 말사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대참화를 거치고, 이 사건 사리구가 봉안된 이후 숭유억불정책을 편 조선시대 400년 동안 사찰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로 존속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일본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조선불교의 효율적인 관리 통제를 위하여 조선불교 교단의 대정비가 이루어지고, 전국의 토지에 대한 조사사업을 실시하여 현대적 의미의 소유권을 원시취득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불교교단의 통폐합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사찰의 물적·인적 요소에 커다란 변혁이 수없이 이루어져 왔음은 공지의 사실인 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원고는 비록 구 현등사와 그 명칭이 같다 하더라도 그와는 별개의 권리주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므로 원고가 현재의 사찰로 존재한 이후 이 사건 사리구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소유하고 있었던 점이 입증되지 않는 이상 구 현등사 소유의 이 사건 사리구에 대한 소유권을 위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총무원 관계자는 "이런 재판부의 논리라면 모든 사찰이 소유한 문화재는 과거의 사찰과 현재의 사찰이 그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되면 결국 모든 사찰 문화재의 도굴이나 절도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항변했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창건 이후 중창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1823년 전각이 소실돼 다음해 동일한 터에 재건한 것 외에는 1,500여 년 동안 잘 간직해온 조계종 천년고찰이다.


1년간의 재건 기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현등사를 과거와 현재로 구분해 별개의 사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한불교조계종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현등사 사리찾기 추진위원회는 "재판부 논리에 따르면 36년간 일제강점기가 있었다는 사유로 대한민국을 과거의 역사와 단절된 일본의 영토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로 보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말하고 "재판부의 편향된 결정으로 1,700년 동안 면면히 흘러온 한국불교의 역사와 대한불교조계종단의 법통을 부정하는 일로 2,000만 불자의 자긍심을 꺽는 폭거"라고 규정했다.


삼성, 훔쳐간 문화재 소장한 프랑스와 닮은 꼴


그렇다면 삼성문화재단은 왜 장물을 사들여 자기 것이라고 우기며 돌려주지 않는 것일까. 특히 현등사의 부처님 사리는 불가의 신앙대상이 되고 있는 부처님의 유해로서 사법상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재판부는 3월 24일 문화재청에 사리가 문화재인지 여부를 밝혀달라며 사실조회를 했다. 문화재청은 회신에서 "사리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의의가 있는 것으로 당대의 문화활동의 소산인 문화재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사리장엄구와 별도로 자리 단독으로만 문화재로 지정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20060824152548_1.jpg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부부가 참석자들과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2004년 10월 13일)

국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는 전 세계 110여개국에 약 7만5천여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 문화유산 중 대표적인 것으로 '직지심체요절'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손에 땀이 나고 머리카락이 서는 듯했습니다. 한 10여 분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승철(38) 박사는 2004년 10월 22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의 직지 열람을 이렇게 회상했다.


독일은 물론 유럽 문명이 자랑하는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먼저 찍어낸 인류역사상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물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인류의 빼어난 문화유산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의 약칭이요, 애칭이다.


대리공사라는 공직자의 신분으로 주재국의 중요한 문화재를 헐값에 사들여 자국으로 반출했으니 그것은 '강탈'이다. 사리판단 능력이 결여된 자와의 법률행위가 무효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법 정신의 기본이다.


직지를 보기위해서는 프랑스를 방문해야 한다. 절에서 친견해야 할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기위해 삼성미술관 리움을 찾는 것과 다를바 없다. 삼성문화재단은 정부와 전국민이 동참하고 있는 '직지'환수 운동에 반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불교계가 부처님 사리를 환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계종 총무원은 삼성과의 전면전도 불사할 방침이다. 현등사 사리구 뿐 아니라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모든 불교성보에 대해 조사하고 환수 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삼성문화재단 관계자는 조계종단의 움직임과 관련, “정당하게 선의 취득한 문화재로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등사의 미숙한 대응...뒤늦은 종단차원 대응


종단 차원이 아니라 말사인 현등사에서 환수 운동을 벌인 것부터가 문제였다. 민사조정을 쉽게 받아들일 삼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재판에 회부되면 상대의 전략을 잘 읽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시사저널은 7월31일자 발매한 876호에서 "중들도 삼성은 무서워한다"라는 기사를 실었을까.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사전에 따르면 "중은 불도를 닦고 실천하는 사람. 근래에는 비하하는 말로 많이 사용한다. 승려나 스님의 호칭이 일반화돼 있다."고 쓰여있다. 한마디로 종단이 웃음거리로 농락당한 것으로 외부 언론은 보고 있는 것이다.


1심의 판결을 뒤집고 승소하기 위해서는 종단차원의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전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불교계에서 사리나 사리구는 조상의 유골과 같은 가장 귀중한 존재이지만, 사회법에서는 하나의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만 판단한다. 더욱이 상대는 국내 최강의 변호인단을 보유한 삼성이라는 거대 권력이다.


종단은 삼성과의 소송을 제25교구 말사인 현등사에 전적으로 일임했다. 현등사는 독자적으로 변호인을 선임하고 토지조사부, 현등사에 관한 역사적 기록물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원고인 현등사는 판사에게 현등사의 연속성을 입증할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현등사 혜문스님은 "회암사지 유물 소유권 소송 당시와 같은 형식의 증거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에 연속성 문제가 쟁점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본사건의 핵심은 도난당한 불교성물인 사리와 사리구는 선의취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며, 사리구에 ‘운악산 현등사’라는 명문이 있음에도 삼성문화재단이 도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20060824153357_2.jpg리움미술관에서 현장검증 중인 혜문스님(수정 사리구 안에서 사리가 방광하고 있다) / 사진제공 혜문스님


도굴꾼 서모씨가 서신과 면회를 통해 밝힌 도굴 정황을 제대로 입증했더라면 판결에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었다. 조계종법률자문위원인 김형남 변호사는 “서씨의 증언은 사리구 반환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재판부가 현등사의 창건부터 현재까지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도굴 당시부터 현재의 현등사의 연속성은 인정, 사리구 소유권이 현등사에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법통 인정’이라는 명분을 얻기엔 부족하지만 사리구 반환이라는 실리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종단은 2심을 앞두고 추진위를 발족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설 태세다. 총무원장 지관스님도 종무회의에서 사리구 반환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단도 새로 구성할 전망이다.


추진위는 발족식을 마친 후 서울서부지법을 항의방문했다. 앞으로 항의 현수막을 조계사와 교구본사, 관람료사찰, 전체사찰로 단계별로 게시할 계획이다. 삼성리움미술관에서 사리친견 법회를 개최하고, 천만불자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중앙종회 본사주지회의 관람료사찰 주지회의에서 항의성명을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식의 대응방식을 재판부나 삼성 나아가 국민들, 문화재 관련 정부부처에서 이를 달가워할 리 없다.


미등 스님(고려대 문화재학과 박사과정)은 "향후 유사한 사건을 위해서라도 전문가 위주의 기구구성을 통해 종단차원의 종합적인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학문적인 뒷받침을 통해 현등사 사리구의 환수 당위성 등을 제시하되, 감정적인 대응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문화재 소유권 분쟁에서 원주인이 제자리로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정부는 보존 능력을 들먹인다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수정시간 : 2006-08-24 17:56:33
입력시간 : 2006-08-23 18:01:53
구호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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