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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도 백제의 것인데, 그걸 화분에 넣어?!"(오마이뉴스 0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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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1 작성일06-12-21 00:54 조회8,9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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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도 백제의 것인데, 그걸 화분에 넣어?!"
충남 서산 보원사지 유물 발굴터의 초라해진 문화재들
btn_send.gifbtn_print.gif텍스트만보기btn_blog.gif btn_memo_send.gif 하태형(sweety7274)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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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원사지의 안내문
ⓒ 하태형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정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같이 먼 옛날에 100개의 암자가 있는 큰 절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백제의 문화와 함께 생활해왔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한 모든 도구들이 오랜 시절 땅속에서 온전하게, 또는 깨어진 갖가지 형태로 후손의 손길을 기다리며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역사의 유물, '문화재'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박물관 내 안전유리 속에서나 감히 볼 듯한 백제의 유물들, 문화재가 내 눈앞에서 도굴범이 아닌 관광객에게 화분장식을 위한 용도로 파헤쳐지고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충남 서산의 보원사지 절터. 지난 1일 가족과 함께 서산의 용현휴양림으로 여행을 하던 중 무심코 보게 된 절터이다. 건물은 모두 소실되어 현재는 절터만 남아있고, 그 주변으로 당간지주와 석탑 등 몇 가지 구조물이 남아있었다. 현재 유물 발굴 중이라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는 곳이었다.

절터 초입의 안내판에 의하면 이 절터는 백제시대 말의 것으로서 예전에는 100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큰 절이었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때 크게 번성한 절이었으나 현재는 소실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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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시대의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제103호)
ⓒ 하태형
입구의 당간지주를 지나 조그만 개울물을 건너 올라서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 있었고, 그 뒤로는 네모 반듯한 여러 집터를 흰색의 끈으로 둘러놓고 그 안에서 유물 발굴 작업을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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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양식을 갖춘 보원사지 5층석탑(보물104호)
ⓒ 하태형
여기서부터 유물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라 출입을 제한한다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이 문구에도 사람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먼 발치이지만 발굴된 기왓장과 깨어진 도자기들을 각각의 발굴현장 번호와 함께 수북이 쌓아놓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하나씩 유물들을 들춰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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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금지 경계선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
ⓒ 하태형
궁금증과 호기심에 우리도 선을 넘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거기에선 사람들이 깨진 유물을 쌓아놓은 것을 하나씩 들춰가면서 그나마 온전히 된 것을 고르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이거 만지시면 안 되잖아요."

엄청난 광경에 멍하니 쳐다만 보던 내 옆에서 아내가 큰소리로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그중 가장 적극적으로 고르든 한 사람이 "이건 깨진 거래서 다 버릴 거예요"라며 오히려 뭐 어떠냐는 식으로 아내를 빤히 쳐다보며 반문했다.

"그래도 각각의 번호 앞에 가지런히 정렬해 놓은 것인데, 이거 나중에 하나씩 맞춰 가며 복원하는 거잖아요. 버리더라도 발굴팀이 보고 버리는 것이지 아저씨가 판단할 건 아니잖아요."

아내도 더더욱 사람들을 나무라며 말을 하자, 적극적인 사람의 일행인 아주머니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깨진 거래서 소용도 없어요. 이거 가져다가 화분에 꽂아 놓으면 좋아요. 빨리 와서 당신들도 고르세요. 좋은 거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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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여있는 유물을 열심히 고르는 아저씨
ⓒ 하태형
용기 내 한마디 거들려고 한 나는 참으로 이 말을 들으니 말문이 콱 막혔다. 그리고 계속하여 사람들에게 역정을 내는 아내에게 "이 사람들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 오히려 우리가 봉변당하겠다. 차라리 신고를 하자"라고 말했다. 열이 난 아내를 데리고 경계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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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발굴터 안까지 들어가는 아주머니
ⓒ 하태형
아뿔싸, 아까 숙소에서 옷 갈아입으면서 둘 다 전화를 안 가지고 나왔다. 문화재 관리국에라도 전화해서 '저거 정말 버리는 것이냐'고, '사람들이 가져가는데 완력을 써서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 한이 된다.

그래도 사진기는 있어서 뒤돌아 그 사람들의 현장을 사진으로나마 남겼다. 아이도 동행했고 막무가내 아저씨들이 있던 터이라 겁이나 가까이 가서 얼굴까지 찍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는 길에 아내의 아이디어로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의 차 번호는 모두 찍었다. 어차피 우리까지 4팀이었고, 차도 4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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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터 안에서 뭔가 주웠다.
ⓒ 하태형
위급할 때 불러보고 싶었던 슈퍼맨도 이 산중엔 없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저녁을 먹는 중에도 계속하여 아쉬움만 남았다.

다음날 여행의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위하여 가던 길 중 다시 보원사지 터를 지나갈 때 어제는 없었던 발굴조사단이 거주하는 컨테이너박스에 인기척이 있었다. 그래서 우린 어제의 사건을 알려 주려고 들어가 그곳 관계자에게 어제의 일들을 상세히 알려주고 가지고 있던 사진을 넘겨주었다.

발굴조사단에게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 관리를 소홀히 하느냐며 말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조사단은 "일요일이고 저녁이 거의 다되어서 일찍 퇴근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질책을 해도 어려운 건 '사람 열 명이 도둑 한 명을 못 잡는다'는 것처럼 유적 터마다 모두 지키는 사람이 있어도 유물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건 지키는 사람이 문제가 아닌 성숙한 시민의식이 먼저이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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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산시 가야산 서산보원사지 절터(사적제316호)
ⓒ 하태형
일본강점기 때 유물강탈,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 등 우리나라의 역사를 무너뜨릴 주변국의 침공은 계속되는데, 그걸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역사의식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지 생각된다.

오늘(20일) 발굴조사단에 전화를 걸어 그 사람들에게서 없어진 유물들은 돌려받았는지 연락을 해보았다. 차량조회를 해서 주소를 알아내 일단 돌려주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답을 들었다. 꼭 되찾길 바라며, 내 아들의 눈앞에서 선명히 벌어진 이런 일들로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좋지 않은 교육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그날 분을 삭이지 못해 뒤돌아서면서도 씩씩거리며 큰소리친 용감한 아내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에 되뇌어진다.

"깨져도 백제의 것인데…. 그렇게 오래 땅속에서 나올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그걸 화분에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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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1일 오후 5시경 서산 보원사지 절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 깨진 작은 유물 하나라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소중히 보존하여 우리의 자손들에게 자랑스런 한국의 역사를 물려줍시다.

2006-10-20 16:38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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