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커플 경주로 떠나는 추억의 신혼여행 -세계일보-200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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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1 작성일06-09-30 22:27 조회8,373회 댓글0건본문
석가탑 앞 팔짱끼고 기습 뽀뽀… "아이남세스러워" | |||
칠순 커플 경주로 떠나는 추억의 신혼여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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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사보기] ◇‘추억의 신혼여행’에 온 노부부들. 감은사지 석탑 “신혼여행의 낭만? 부끄러워서 첨성대, 불국사도 제대로 못 봤지요.” 정수화(71·여)씨는 50년 전 경주로 신혼여행을 갔다 왔다. 남녀가 바라보고 웃기만 해도 마을에 스캔들이 돌던 시절이었다. 정씨는 낭만이 뭔지도 모른 채 일흔이 넘어 버렸다. 그렇게 반 세기를 살고 ‘신랑’ 박영래(74)씨와 다시 경주로 신혼여행을 왔다. 노부부는 노을이 비끼는 불국사에서 요즘 커플처럼 ‘스킨십’을 나눈다. 어느덧 둘은 눈부신 21살, 24살 신혼부부로 되돌아가 있다. # 첫날밤을 다시 한번 경주로 허니문을 떠나기 위해 KTX를 탔다. 미끈하게 쭉 빠진 열차는 나는 듯 철로를 달린다. 창밖은 황금색 들판의 파노라마다. 정씨 부부는 좌석에 몸을 묻고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한다. 50년 전 ‘가시끼리 다꾸시’(대절 택시)를 타고 경주에 왔을 땐 달랐다. 결혼식 당일 처음 대면한 것과 다름없는 남편은 ‘외간 남자’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긴장한 탓에 경치를 감상할 틈이 없었다. 몸에 밴 남녀유별 가풍이 더욱 기분을 얼어붙게 했다. 다시 온 신혼여행은 안락하고 즐겁다. 점심은 풍경이 울리는 한식당에서 콩으로 만든 스테이크를 먹었다. 순채소 식단이라 뱃속이 편안하다. 식사 후엔 국립 경주박물관에 들러 에밀레종, 신라 벽화, 석탑 등 천년 고도의 흔적을 둘러본다. 문화해설자에게 ‘성인용’ 야사를 듣고 개구쟁이처럼 웃기도 한다. 저물녘,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토함산 불국사에 올랐다. 대웅전 너머 가을 하늘은 푸르디푸르다. 분위기에 취해 정씨는 남편 박씨와 석가탑 앞에서 팔짱을 낀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기습 뽀뽀’를 시도한다. “아이, 남세스럽게….” 쑥스러워하면서도 은근히 기뻐하는 ‘새댁’ 목소리가 들린다. 저녁엔 호텔에서 와인을 곁들여 정찬을 들었다. 확실히 50년 전 ‘토함산 여관’에서 밤을 보낸 때와 비교된다. 참 긴 세월이 흘렀다. 청춘은 어느 결에 사라졌지만, 노부부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깊어진 것을 느낀다. 다시 맞은 첫날밤은 사랑이 넘치면서도 잔잔하다. ◇석가탑 앞 '스킨십'(왼쪽), 옛 사진을 보며 신혼을 떠올리는 부부 # 왕과 왕비가 되다 ‘추억의 경주 신혼여행’엔 정씨 부부 외에 3쌍의 노부부가 참여했다. 여행 둘째 날, 이들은 오늘 잠깐이나마 신라의 왕과 왕비로 등극했다. 연못이 아름다운 안압지에서 부부는 왕실의 의복과 금관을 착용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자줏빛 곤룡포는 500만원, 번쩍이는 금관은 150만원이나 나간다. 화려한 비단옷을 연륜이 있는 노부부가 입으니 근엄하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볼 정도다. 금관을 쓴 박씨가 짐짓 의고투로 말한다. “부인, 그동안 잘 살아줘서 고맙소. 앞으로 어떻게 이 은혜를 갚지?” 정씨는 이에 “이렇게 늙어버렸는데 어떻게 더 잘해 주려고요. 그저 건강만 하세요”라며 새침하게 대꾸한다. 충남 당진에서 온 손풍운(60)·이병열(58)씨 부부도 왕실 분장이 즐겁다. 몇 분 안 돼 사진 촬영이 끝난 게 못내 아쉽다. 부부는 “5분 동안 왕이 됐다가 금방 평민으로 강등됐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할 사진은 건졌잖여”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저녁엔 최부자집 한옥을 개조한 ‘요석궁’에서 진수성찬을 든다. 고종의 아들 이강 왕자뿐만 아니라 고관대작이 즐겨 들렀던 곳이다. 마당에선 고운 가인들이 이들을 위해 가야금과 해금을 연주한다. 여기저기서 추임새를 넣는 신나는 ‘라이브’ 공연이다. 금관과 비단옷은 반납했어도, 왕이 된 기분은 계속 이어진다. # 더욱 달콤한 두 번째 허니문 마지막 날엔 전통 가옥 ‘수오재’에서 시골 아침상을 받는다. 쑥국에 양배추, 풋고추, 두부 부침, 김치 정도지만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한국인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 구수한 맛이다. 식사 후, ‘신혼부부’ 4쌍은 구들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너나할 것 없이 제2의 신혼여행을 보내 준 딸, 며느리 칭찬을 서너 번씩 한다. 서울 현저동에서 온 윤호자(60)씨는 “자식이 여행을 보내주겠다면 못 이기는 척하는 게 대부분 부모들이지요. 속으로 무척 기쁘거든요. 남에게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오후엔 감은사지 터와 석굴암 본존불상, 대왕암에 들렀다. 천년이 지나 고색창연한 신라 유적은 이들의 결혼 생활과 닮은 점이 있다. 오래될수록 은은한 빛이 흘러 나온다는 것이다. 정씨는 말한다. “입 안의 혀도 물릴 때가 있는데, 50년 동안 남편이 항상 눈에 안겼던 건 아니지요. 저도 이 사람한테 마찬가지였겠지요. 하지만 수십년간 맞춰 살다 보니 이제 한몸 같습디다. 두 번째 신혼여행이 오히려 아늑하고 달콤하네요.” 한국관광공사, 경상북도가 후원하는 ‘추억의 경주 신혼여행’은 10월17∼19, 11월14∼16일에도 떠난다. 내년 3월부턴 매달 떠날 예정이다. 2박3일 동안 일급 호텔에서 묵으면서 두루 서라벌을 노닌다. 한방 진찰, 양동마을에서의 전통차 음미 등 나이 지긋한 부부를 배려한 시간도 마련한다. 비용은 1인 60만원. 올해까진 50만원으로 할인한다. 신라문화원 (054)774-1950, www.silla.or.kr 경주=글·사진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2006.09.28 (목) 17: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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