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상의 기준작 문경 대승사 아미타불상-연합뉴스 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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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0-01-03 11:08 조회8,652회 댓글0건본문
묵서 발견으로 1301년 제작 판명, 보물 예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청이 보물 지정을 예고했다고 30일 발표한 대구ㆍ경북 지역 불교 성보문화재 16건에는 문경 대승사 극락보전에 봉안한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복장유물이 포함됐다.
이번 보물 지정 예고를 위한 기초 조사를 담당한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범하스님)는 이 금동 불상과 관련한 상세한 조사 성과를 추가로 공개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금동 아미타불 좌상은 몇 년 전까지는 같은 사찰 대웅전에 봉안돼 있다가 근래 극락전으로 이안(移安)했으며, 그 좌우에는 각각 협시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잡고 있다.
그 양식적인 특성으로 볼 때, 14세기 무렵 고려시대 작품으로 학계에서 추정한 이 불상이 제작 연대가 확실히 밝혀지게 된 것은 지난 10월23일이었다.
이날 연구소는 불상의 성분 분석을 위해 X-레이 조사를 하다가 놀랍게도 불상 육계 부분에서 불상 조성 당시에 납입됐다고 추정되는 묵서(墨書)가 적힌 다라니(불교에서 쓰는 주문)를 발견했다.
이 묵서에는 "대덕 5년 신축 5월20일에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 인출(印出.목판에 찍어 펴냄)했다"(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宮闕都監錄事別將丁承說印出. /는 줄바뀜)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대덕 5년은 1301년이며, 고려 충렬왕 27년(1301)이 된다.
나아가 불상 복부에 넣은 공양품들인 복장(腹藏)에서는 고려시대 다라니류 3종 12매와 같은 시대 묵서가 적힌 향낭(향을 넣는 주머니) 1점이 발견됐다.
3종 다라니는 아미타삼존다라니(阿彌陀三尊陀羅尼) 1매(1301년)와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 8매(충렬왕 18년<1292> 판각), 그리고 정확한 인출 연도는 불명이지만 고려후기로 판단되는 아자범자원상태장계만다라(阿字梵字圓相胎藏界曼茶羅) 3매로 구성된다.
이들 자료를 통해 이 금동 아미타불좌상은 1301년 무렵에 제작됐으며, 발원자 혹은 시주자는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더욱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출처 불명이던 국내 기관 및 개인 소장 일련의 묵서 자료 10여 장도 다름 아닌 이번 대승사 금동 아미타불 좌상 복장 유물 일부였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이들 묵서 자료는 대승사 복장품 묵서와 지질과 필체가 같을 뿐만 아니라 그 문구에서도 "大德五年五月二十日彫板 奴介'라든가 '興威衛保勝別將丁承說書', '良得卜仁莊子奴介'와 같은 대목이 보인다.
인출 연대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발원자 혹은 시주자도 같은 정승설로 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사 금동불상의 복장유물은 전부가 외부로 유출되지는 않고 이번에 발견된 다라니 일부 등은 왜 남았을까?
그 원인을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견한 다라니류는 복장 깊숙이, 쉽게 꺼낼 수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 이 불상은 조성연대가 밝혀짐에 따라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기준작이 될 전망이다.
한국불교미술사 전공인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최성은 교수는 "고려시대 불상 중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원래는 서산 부석사에 있다가 지금은 일본 쓰시마섬 관음사에 가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1330년)과 1333년 무렵 조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금동대세지보살입상 정도밖에 없다"면서 "이번 대승사 금동불상은 그런 점에서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연대나 양식 등을 추정하는 기준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목조 불상 중에서는 1280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개심사 불상과 1274년 보수한 서울 개운사 소장 불상 등이 있지만, 보수한 연대만 알 수 있을 뿐 처음 제작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여러 각도에서 본 대승사 아미타불상>>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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