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상의 기준작 문경 대승사 아미타불상-연합뉴스 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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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0-01-03 11:08 조회9,273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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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 발견으로 1301년 제작 판명, 보물 예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청이 보물 지정을 예고했다고 30일 발표한 대구ㆍ경북 지역 불교 성보문화재 16건에는 문경 대승사 극락보전에 봉안한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복장유물이 포함됐다.
이번 보물 지정 예고를 위한 기초 조사를 담당한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범하스님)는 이 금동 불상과 관련한 상세한 조사 성과를 추가로 공개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금동 아미타불 좌상은 몇 년 전까지는 같은 사찰 대웅전에 봉안돼 있다가 근래 극락전으로 이안(移安)했으며, 그 좌우에는 각각 협시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잡고 있다.
그 양식적인 특성으로 볼 때, 14세기 무렵 고려시대 작품으로 학계에서 추정한 이 불상이 제작 연대가 확실히 밝혀지게 된 것은 지난 10월23일이었다.
이날 연구소는 불상의 성분 분석을 위해 X-레이 조사를 하다가 놀랍게도 불상 육계 부분에서 불상 조성 당시에 납입됐다고 추정되는 묵서(墨書)가 적힌 다라니(불교에서 쓰는 주문)를 발견했다.
이 묵서에는 "대덕 5년 신축 5월20일에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 인출(印出.목판에 찍어 펴냄)했다"(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宮闕都監錄事別將丁承說印出. /는 줄바뀜)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대덕 5년은 1301년이며, 고려 충렬왕 27년(1301)이 된다.
나아가 불상 복부에 넣은 공양품들인 복장(腹藏)에서는 고려시대 다라니류 3종 12매와 같은 시대 묵서가 적힌 향낭(향을 넣는 주머니) 1점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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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종 다라니는 아미타삼존다라니(阿彌陀三尊陀羅尼) 1매(1301년)와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 8매(충렬왕 18년<1292> 판각), 그리고 정확한 인출 연도는 불명이지만 고려후기로 판단되는 아자범자원상태장계만다라(阿字梵字圓相胎藏界曼茶羅) 3매로 구성된다.
이들 자료를 통해 이 금동 아미타불좌상은 1301년 무렵에 제작됐으며, 발원자 혹은 시주자는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더욱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출처 불명이던 국내 기관 및 개인 소장 일련의 묵서 자료 10여 장도 다름 아닌 이번 대승사 금동 아미타불 좌상 복장 유물 일부였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이들 묵서 자료는 대승사 복장품 묵서와 지질과 필체가 같을 뿐만 아니라 그 문구에서도 "大德五年五月二十日彫板 奴介'라든가 '興威衛保勝別將丁承說書', '良得卜仁莊子奴介'와 같은 대목이 보인다.
인출 연대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발원자 혹은 시주자도 같은 정승설로 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사 금동불상의 복장유물은 전부가 외부로 유출되지는 않고 이번에 발견된 다라니 일부 등은 왜 남았을까?
그 원인을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견한 다라니류는 복장 깊숙이, 쉽게 꺼낼 수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 이 불상은 조성연대가 밝혀짐에 따라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기준작이 될 전망이다.
한국불교미술사 전공인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최성은 교수는 "고려시대 불상 중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원래는 서산 부석사에 있다가 지금은 일본 쓰시마섬 관음사에 가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1330년)과 1333년 무렵 조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금동대세지보살입상 정도밖에 없다"면서 "이번 대승사 금동불상은 그런 점에서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연대나 양식 등을 추정하는 기준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목조 불상 중에서는 1280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개심사 불상과 1274년 보수한 서울 개운사 소장 불상 등이 있지만, 보수한 연대만 알 수 있을 뿐 처음 제작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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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각도에서 본 대승사 아미타불상>>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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