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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상께 올리는 편지 (08/01/14 오마이뉴스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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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4-26 21:04 조회6,8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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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벗으신 모습, 저도 즐겁습니다
 
  안서순 (ass1273) 
 
 
 
 

 
 
▲ 자비로운 미소가 가득한 서산마애삼존불상 다시 세상밖으로 나온지 스무날 남짓 하지만 그사이 부처님은 세상일을 모두보고 들어 다 알고 있다. 고 하는 것 같다. 
ⓒ 안서순  서산마애삼존불상
 
 

 

번뇌를 벗으시고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 계신 부처님을 뵙는 저는 즐겁습니다. 지난해 섣달 스무이튿날 찾아뵙고 열엿새 만에 다시 뵙는데도 새롭습니다. 그새 겨울비도 두어 번 맞으셨고 눈도 세 차례 정도 보셨지요. 보름달도 보셨고 지금은 다시 커가는 상현달을 보고 계시겠지요.


보시다시피 부처님 계신 앞마당과 응달진 계곡은 어제 내린 눈이 하얐게 남아있고 갑자기 내려간 온도로 오르는 길은 빙판처럼 얼어붙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 입고 계신 통견과 법의가 뽀송뽀송하게 말라 바람결에 옷고름이 날리는 것처럼 보여 좋습니다. 사실은 추운 날씨 속에 젖은 법의를 그냥 입고 계시면 어떡하나 적잖이 걱정을 했었습니다.


어떠신지요, 세상 밖으로 나오신 것이. 제가 보기엔 ‘그래, 정말 좋구나’ 하며 웃는 모습이 천연하신 듯한데 맞는지요. 그간 며칠 지나지는 않았지만, 대중들에게 설법은 많이 하셨나요. 대중들이 알아듣고 이해는 하던가요? 혹시 어려운 법어를 섞어 선문답을 하신 것은 아니겠지요. 요즘 사람들은 어려운 말을 하면 알아듣지도 못할 뿐더러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 서산마애삼존불상 부처님은 천년전 일을 다 기억하고 있고 대중들에게 그간 못다한 설법을 펴고 계시다. 
ⓒ 안서순  서산마애삼존불상
 
 

 

언젠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시다가 길에 떨어진 새끼줄을 주워들면서 “이건 생선을 꿰었던 것이구나” 하셨을 때 제자가 “무얼 꿰었었는지 보시지도 않고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었고 다시 부처님이 “새끼줄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질 않느냐” 하셨던 것처럼 중생들에게는  쉽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세상엔 ‘선문답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얼 물으면 알아듣지 못하게 뜬 구름 같은 대답을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 일이 모두 선문답 같습니다. 요즘에는 부처님께서 세상 밖으로 나오셨대서 구경삼아 오는 대중들이 많아 설법하시거나 묵상을 하시는데 방해가 되진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겨울 날씨 탓에 얼지 않고 수천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졸졸 흐르는 강댕이골 개울물 소리가 천년 전 일을  소곤거리는 듯 합니다. 산을 넘고 마을을 지난 바람이 세상 이야기를 빠짐없이 부처님께 늘어놓던가요.


 

부처님께서 ‘난 그간의 일에 대해 다 들었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이명박씨 대통령 당선된 것, 미국 대선 이야기, 아프가니스탄, 중동사태까지 모두 안다. 내가 살아오면서 보아온 세월은 천년이지만 세상은 그 이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더 오랜 세월을 갈 세상이다, 1년, 5년, 10년, 100년 하는 세월이 영겁에 비하면 얼마 보잘 것 없는 찰나인가’ 하시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선 백제가 망한 후 유민들이 구토회복을 위한 부처님이 계신 이 가야산 자락에 근거지로 쌓았다는 ‘임존성’ 터를 알고 계시고 임진왜란 때의 승병활동을 구한말에는 일본군과 관군에 쫒긴 동학 농민군의 한 서린 피울음을 한국동란 때는 산으로 간 ‘산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음을 당한 가슴 아린 사연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시죠.


산골짜기를 지나온 바람이 앞마당을 쓸고 부처님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 부처님은 오래 전 백제와 신라의 승려들이 당나라로 불법을 구하러 간다며 절을 하고 떠난 그때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동학혁명 때 쫒겨 들어와 장엄한 최후를 마친 농민군의 명복을 빌고 계십니까?

 

 
 
▲ 마애불상에게 올리는 돌탑공양 서산마애불상이 있는 산길은 돌탑공양으로 이어져 있다. 
ⓒ 안서순  서산마애삼존불상 
 
 

 

아니면 한국동란 때 쫒겨가던 젊은 파르티잔의 추레한 모습을 떠올리고 계신지요. 그도 아니면 유교의 법도가 사뭇 삼엄할 때 반가의 부녀와 사통하고 밤을 도와 그 부녀와 달아나면서도 잘되게 해달라고 급하게 절을 올리고 떠난 이웃마을의 머슴을 추억하고 계신가요.


부처님이 인바위(印岩)로 인근 지역에만 알려지고 있던 시절, 부처님 우측에 서 있는 보살입상에 돌맹이를 던져 양팔과 좌측 다리를 잃게 한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을 용서하셨죠? 여전히 웃으시는 모습이 ‘그렇다’ 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모든 것을 초탈하신 부처님의 모습은 장엄하기도 하고 한없이 자애로와 보입니다. 들으니 부처님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일 때는 오후 3시께라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보존각을 철거한 후 3일에 걸쳐 하루 종일 해의 위치에 따라 마애삼존불상을 관찰한 서산시청 문화재전문가인 박경순 주사가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사방에서 큰 나무들이  마애불상을 둘러싸고 있어 오전에는 제대로 된 미소를 볼 수가 없고 오후 3시께 넘어가는 햇볕에 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 겨울날다운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산이 붉은 진달래로 뒤덮이고 산수유 향기 가득 차는 좋은 봄날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하루 종일 부처님과 함께 있을 겁니다.     


부처님 저와 더 친해지면 오래전 백제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동학농민군의 최후, 파르티잔의 아픔,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은 역사는 물론, 현세를 통찰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학습을 시켜 주시겠는지요. 좋은 봄날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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