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관음보살좌상은 약탈품" 일부 학계 주장 (매일경제 201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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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01-31 07:32 조회4,636회 댓글1건본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약탈품" 일부 학계 주장
불상 반환 계속 논란…문화재청은 사실상 반환절차 착수
기사입력 2013.01.30 17:00:00 | 최종수정 2013.01.30 17:10:15
문화재 전문털이범들이 일본 쓰시마에서 훔쳐 온 불상 2점을 확보하고 있는 문화재청이 사실상 이를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들 불상 중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에 의해 약탈된 것이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반환 절차를 즉각 중단하고 불상이 불법으로 일본으로 흘러간 것인지 유출 경위를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재청은 "이르면 금주 중 불상 전문가 평가단을 구성해 불상이 실제 신라ㆍ고려 때 것이 맞는지 감정하고 일본에서 도난당한 것과 동일한 불상인지도 확인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일본 문화청 소속 전문가들도 참여시킬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그러면서 "왜구들이 약탈해 갔는지, 일제 때 불법적으로 유출됐는지 여부는 조사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따라서 반환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내 불상 연구 최고 권위자인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은 이날 "1980년대 중반 5차례에 걸쳐 대마도에 있는 불상을 전수 조사한 적이 있다"면서 "규슈대 대마도 보고서를 근거로 이번에 국내로 반입된 두 불상 중 관음사에 보관 중이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이 1330년에 제작됐고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사라진 것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 소장에 따르면 부석사에는 애초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이 존재했다. 중앙의 본존 불상이 있고 이를 향해 좌우에 2개의 불상을 배치했다. 우측 불상은 현재 머리만 남아 부석사에 보관돼 있고 좌측 불상이 바로 이번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본존은 행방이 묘연하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매우 드물게 제작 연대가 밝혀져 가치가 높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학계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당장 국보 지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문 소장은 "1350년대 이후 왜구의 침입이 집중되는데 이 시기 충청도에 들이닥친 왜구가 불상을 노략질해 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 14세기 중반 일본 최초 무사정권인 가마쿠라(鎌倉)막부가 성립된 이래 일본에서 전란과 기근이 끊이지 않으면서 여말 40년 동안 무려 500차례에 달하는 왜구 침입이 있었다. 이 시기 부석사 인근 지역에도 왜구의 약탈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고려사절요는 공민왕 7년(1358년) 왜적이 한주(서천)와 면주(당진)를 침범해 노략질했으며, 우왕2년(1376년)에는 공주가 왜적에 의해 함락됐고 논산 개태사도 도륙됐다고 쓰고 있다.
우왕 3년(1377년)에는 홍성(2월), 온양(9월), 부여(11월)를 침범했다고 적고 있다. 일각에서 포교를 위해 불상을 일본에 보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문 소장은 "사찰에서 모셨던 불상을 선물로 줬다는 말은 들어본 바가 없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문 소장은 "부석사와 서산 지역에서 2000년대 초반 문화재환수운동까지 벌어진 사실조차 문화재청은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한철 기자]
불상 반환 계속 논란…문화재청은 사실상 반환절차 착수
기사입력 2013.01.30 17:00:00 | 최종수정 2013.01.30 17:10:15
문화재 전문털이범들이 일본 쓰시마에서 훔쳐 온 불상 2점을 확보하고 있는 문화재청이 사실상 이를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들 불상 중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에 의해 약탈된 것이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반환 절차를 즉각 중단하고 불상이 불법으로 일본으로 흘러간 것인지 유출 경위를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재청은 "이르면 금주 중 불상 전문가 평가단을 구성해 불상이 실제 신라ㆍ고려 때 것이 맞는지 감정하고 일본에서 도난당한 것과 동일한 불상인지도 확인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일본 문화청 소속 전문가들도 참여시킬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그러면서 "왜구들이 약탈해 갔는지, 일제 때 불법적으로 유출됐는지 여부는 조사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따라서 반환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내 불상 연구 최고 권위자인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은 이날 "1980년대 중반 5차례에 걸쳐 대마도에 있는 불상을 전수 조사한 적이 있다"면서 "규슈대 대마도 보고서를 근거로 이번에 국내로 반입된 두 불상 중 관음사에 보관 중이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이 1330년에 제작됐고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사라진 것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 소장에 따르면 부석사에는 애초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이 존재했다. 중앙의 본존 불상이 있고 이를 향해 좌우에 2개의 불상을 배치했다. 우측 불상은 현재 머리만 남아 부석사에 보관돼 있고 좌측 불상이 바로 이번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본존은 행방이 묘연하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매우 드물게 제작 연대가 밝혀져 가치가 높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학계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당장 국보 지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문 소장은 "1350년대 이후 왜구의 침입이 집중되는데 이 시기 충청도에 들이닥친 왜구가 불상을 노략질해 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 14세기 중반 일본 최초 무사정권인 가마쿠라(鎌倉)막부가 성립된 이래 일본에서 전란과 기근이 끊이지 않으면서 여말 40년 동안 무려 500차례에 달하는 왜구 침입이 있었다. 이 시기 부석사 인근 지역에도 왜구의 약탈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고려사절요는 공민왕 7년(1358년) 왜적이 한주(서천)와 면주(당진)를 침범해 노략질했으며, 우왕2년(1376년)에는 공주가 왜적에 의해 함락됐고 논산 개태사도 도륙됐다고 쓰고 있다.
우왕 3년(1377년)에는 홍성(2월), 온양(9월), 부여(11월)를 침범했다고 적고 있다. 일각에서 포교를 위해 불상을 일본에 보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문 소장은 "사찰에서 모셨던 불상을 선물로 줬다는 말은 들어본 바가 없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문 소장은 "부석사와 서산 지역에서 2000년대 초반 문화재환수운동까지 벌어진 사실조차 문화재청은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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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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